개념 확장 지도
수학에서 막히는 자리는 대개 계산이 아니라 정의가 한 번 넓어지는 순간입니다.
삼각비는 직각삼각형의 예각에서만 정의되는데 어느 날 삼각함수가
되어 $\sin 120^\circ$를 묻고, 지수는 "여러 번 곱한다"였는데 $2^{1/2}$이 나옵니다.
이때 필요한 것은 새 정의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, 왜 새 정의가 하필 그 모양이어야 하는지를 보는 눈입니다.
확장을 넘는 다섯 칸
모든 확장은 같은 순서를 밟습니다. 새로운 정의를 만났을 때 이 다섯 가지를 스스로 물어보세요.
- ① 여기서 막힌다 — 옛 정의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
- ② 무엇을 지킬까 — 넓혀도 지켜야 할 성질 — 이것이 새 정의를 강제한다
- ③ 그래서 새 정의는 — ②를 지키려면 이 모양일 수밖에 없다
- ④ 옛것과 일치하나 — 좁은 영역에서 예전 값과 같은지 확인
- ⑤ 대신 잃는 것 — 확장은 공짜가 아니다
특히 ②가 핵심입니다. 새 정의는 아무렇게나 정한 약속이 아니라,
지켜야 할 성질 하나를 붙잡으면 그 모양일 수밖에 없게 결정됩니다. 그리고 ④에서
옛 정의와 값이 같음을 확인해야 비로소 "넓혔다"고 말할 수 있습니다.
연산이 늘 되게 하려고
어떤 계산이 '가끔 안 되는' 상태를 못 견뎌 수를 넓힌 경우. 넓히는 쪽이 아니라 막힌 계산이 주인공이다.
① 여기서 막힌다
사탕 $3$개를 $4$명이 똑같이 나누면 한 사람 몫은 얼마인가? $3 \div 4$는 자연수로 딱 떨어지지 않아 답을 적을 수가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"똑같이 나눈 한 몫"이라는 나눗셈의 뜻. 네 사람의 몫을 다시 네 번 더하면 반드시 $3$이 되어야 한다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나눗셈의 결과 자체를 $\dfrac{3}{4}$이라는 새 수로 부른다. 분모는 몇 등분인지, 분자는 그중 몇 몫인지를 나타낸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$8 \div 4$처럼 딱 떨어지던 경우는 $\dfrac{8}{4} = 2$로 예전 답과 그대로 같다.
⑤ 대신 잃는 것
"나누면 작아진다"는 감각이 깨진다. $6 \div \dfrac{1}{2} = 12$처럼 $1$보다 작은 수로 나누면 오히려 커진다.
① 여기서 막힌다
$3 - 5$는 얼마인가? 자연수 안에서는 뺄셈이 늘 되지는 않는다. "$5$개에서 $3$개를 뺀다"는 되는데 그 반대는 셀 것이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덧셈과 곱셈의 계산 규칙(교환·결합·분배)과, 수직선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커진다는 순서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$0$과 음의 정수를 들여와 수직선을 왼쪽으로 잇는다. 뺄셈은 "반대 방향으로 더하기"가 되어 언제나 가능해진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양수끼리의 덧셈·곱셈·대소 비교는 예전과 완전히 같다.
⑤ 대신 잃는 것
"수는 개수"라는 직관이 끊긴다. $-3$개의 사과는 없다 — 빚, 영하 온도, 해수면 아래처럼 방향이 있는 양으로 뜻을 옮겨야 한다.
새로운 수를 들여오려고
기존 수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양이 눈앞에 있어(정사각형의 대각선, 제곱해서 음수) 수의 종류 자체를 늘린 경우.
① 여기서 막힌다
넓이가 $2$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얼마인가? 자를 대면 분명히 존재하는 길이인데, 제곱해서 $2$가 되는 분수는 하나도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길이에는 반드시 수가 대응한다는 것, 그리고 "제곱"의 뜻 자체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제곱해서 $2$가 되는 양수를 $\sqrt{2}$라는 새 이름으로 들여온다. 분수로 적을 수 없는 이런 수를 무리수라 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$\sqrt{4} = 2$처럼 원래 유리수로 적히던 값은 그대로다. 사칙연산 규칙도 달라지지 않는다.
⑤ 대신 잃는 것
소수로 끝까지 적을 수 없다. $1.414\ldots$는 근삿값일 뿐이라, 정확한 값 $\sqrt{2}$와 계산용 근삿값을 구분해 다뤄야 한다.
① 여기서 막힌다
$x^2 = -1$의 해는 무엇인가? 실수는 제곱하면 반드시 $0$ 이상이라 해가 없다. 그런데 삼차방정식을 풀다 보면 이 "없는 수"를 거쳐야 실수 해가 나온다.
② 무엇을 지킬까
사칙연산의 규칙(교환·결합·분배)과, 실수끼리 계산한 결과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$i^2 = -1$인 수 $i$를 들여오고, $a + bi$ 꼴을 복소수라 한다. 계산은 $i^2$를 $-1$로 바꾸는 것 말고는 다항식과 똑같이 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$b = 0$이면 $a + 0i = a$로 예전 실수와 완전히 같다. 실수는 복소수의 특별한 경우가 된다.
⑤ 대신 잃는 것
대소 관계를 잃는다. 복소수에는 "크다·작다"가 없어서 수직선에 세울 수 없고, 대신 평면(복소평면)이 필요하다.
정의가 통하는 범위를 넓히려고
수는 그대로인데 '어디까지 넣을 수 있는가'가 넓어진 경우. 원래 정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말이 됐다.
① 여기서 막힌다
$\sin 120^\circ$는 얼마인가? 삼각비는 직각삼각형의 변의 비로 정의돼 있어 $0^\circ < \theta < 90^\circ$인 예각에서만 말이 된다. 직각삼각형에는 둔각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빗변을 $1$로 잡았을 때 $\sin\theta$는 높이, $\cos\theta$는 밑변이라는 값의 뜻. 각을 넓혀도 이 의미는 지켜져야 한다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반지름 $1$인 원(단위원) 위에서 각 $\theta$가 가리키는 점의 좌표를 $(\cos\theta,\ \sin\theta)$로 정의한다. 각은 한 바퀴를 넘어도, 음수여도 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$0^\circ < \theta < 90^\circ$에서 그 점은 빗변이 $1$인 직각삼각형의 꼭짓점과 같은 자리다. 그래서 값이 예전 삼각비와 정확히 일치한다.
⑤ 대신 잃는 것
그림이 삼각형에서 원으로 바뀐다. "변의 길이의 비"라는 설명은 더 이상 맞지 않고, 값의 부호는 사분면으로 따져야 한다.
① 여기서 막힌다
$2^0$, $2^{-1}$, $2^{1/2}$은 얼마인가? "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한다"는 뜻으로는 $0$번, $-1$번, 반 번 곱할 수가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지수법칙 $a^m \times a^n = a^{m+n}$. 이 규칙이 계속 성립하도록 값을 정한다 — 지켜야 할 것이 새 정의를 강제한다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$a^m \times a^0 = a^m$이려면 $a^0 = 1$, $a^n \times a^{-n} = a^0$이려면 $a^{-n} = \dfrac{1}{a^n}$, $\left(a^{1/n}\right)^n = a$이려면 $a^{1/n} = \sqrt[n]{a}$여야 한다. 이렇게 지수를 실수 전체로 넓히면 $y = a^x$가 매끄러운 함수가 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지수가 자연수일 때는 여전히 반복 곱셈과 같은 값이다.
⑤ 대신 잃는 것
"몇 번 곱한다"는 원래 뜻은 버려야 한다. 이제 지수는 횟수가 아니라 지수법칙을 잇는 눈금이다.
유한에서 무한으로
끝이 있는 계산(유한한 덧셈, 조각내어 재기)을 끝없는 상황까지 밀고 간 경우. 극한이 다리 역할을 한다.
① 여기서 막힌다
유리수만 수직선에 찍으면 빈틈이 남는가? $\sqrt{2}$가 있어야 할 자리는 유리수를 아무리 촘촘히 찍어도 채워지지 않는다.
② 무엇을 지킬까
수직선 위의 모든 점에 수가 하나씩 대응한다는 것, 그리고 두 수의 대소를 언제나 비교할 수 있다는 것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유리수와 무리수를 합쳐 실수라 하고, 실수 전체가 수직선의 점 전체와 빈틈없이 대응한다고 본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유리수끼리의 사칙연산과 대소 비교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.
⑤ 대신 잃는 것
대부분의 실수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다. 우리가 적을 수 있는 수(유리수, $\sqrt{2}$, $\pi$)가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.
① 여기서 막힌다
$\dfrac{1}{2} + \dfrac{1}{4} + \dfrac{1}{8} + \cdots$을 끝까지 더하면 얼마인가? 항이 무한히 많아 "다 더한다"는 말 자체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.
② 무엇을 지킬까
유한 개를 더한 값(부분합)과, 더해 갈수록 그 값이 어디로 향하는가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앞에서부터 $n$개를 더한 부분합 $S_n$을 만들고, $n \to \infty$일 때 $S_n$의 극한을 무한급수의 합으로 정의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유한 개를 더하는 경우에는 부분합 그 자체라 예전 덧셈과 같다.
⑤ 대신 잃는 것
덧셈의 성질 일부를 잃는다. 극한이 없으면 합 자체가 없고, 어떤 급수는 더하는 순서를 바꾸면 값이 달라진다.
① 여기서 막힌다
곡선 $y = x^2$과 $x$축, $x = 1$로 둘러싸인 넓이는 얼마인가? 직사각형·삼각형 공식으로는 곡선 아래를 잴 수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직사각형의 넓이는 가로 $\times$ 세로라는 것, 그리고 조각으로 나눠 더하면 전체가 된다는 것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가는 직사각형으로 잘게 채워 넓이를 더한 뒤, 폭을 $0$으로 보내는 극한을 정적분 $\displaystyle\int_0^1 x^2\,dx$로 정의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직사각형이나 삼각형처럼 공식이 있던 도형은 정적분으로 계산해도 같은 값이 나온다.
⑤ 대신 잃는 것
"재서 구한다"는 감각 대신 극한이 존재하는지를 따져야 한다. 잘게 나누는 방식에 따라 값이 흔들리면 넓이를 정의할 수 없다.
차원을 늘리려고
규칙은 그대로 두고 성분만 늘린 경우. 계산은 거의 그대로인데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워진다.
① 여기서 막힌다
공중에 떠 있는 두 점의 관계를 어떻게 적는가? 평면 위의 성분 $(x,\ y)$만으로는 높이를 적을 자리가 없다.
② 무엇을 지킬까
벡터의 덧셈·실수배와 내적의 계산 방식 — 성분끼리 더하고, 성분끼리 곱해 더한다.
③ 그래서 새 정의는
성분을 하나 늘려 $(x,\ y,\ z)$로 두고, 계산 규칙은 그대로 적용한다.
④ 옛것과 일치하나
$z = 0$으로 두면 평면벡터와 완전히 같다. 평면은 공간의 특별한 경우가 된다.
⑤ 대신 잃는 것
그림으로 확인하기 어려워져 눈이 아니라 성분 계산을 믿어야 한다. 대신 $3$차원에만 있는 연산(외적)이 새로 생긴다.